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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林(유림103)제1부 王道(왕도) 제4장 文正公(문정공)에 나오는 지금부터 약500여년전 朝鮮王朝歷史(조선왕조역사)를 토대로  이야기 해 보기로 한다.

政治家(정치가)인 조광조는 조선중기 學者(학자)인  같은 신진 士林派(사림파)였던 김정국으로부터도 아래와 같은 글귀를 전해 받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나 지금이나 군자의 몸가짐에는 공경하고 겸손한 것이 복을 누리는 터전이 된다. 어찌 경계하지 않으리오(古(고)今(금)一(일)轍(철) 君(군)子(자)處(처)身(신) 持(지)敬(경)謙(겸)遜(손) 享(형)福(복)之(지)基(기) 何(하)不(불)戒(계)哉(재)也(야)).’라는 警策(경책)을 받는다, 조광조. 비록 도덕적으로는 훌륭한 군자였지만 정치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말을 즐겨하는 多辯(다변)과 자기의 뜻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교만이었던 것이다. 實錄(실록)에도 조광조가 경연에서 말을 독차지하여 ‘한번 말을 꺼내면 날이 저문 줄도 모를 정도로 하루 종일 계속되어 차츰 조광조의 집요함에 싫증을 느껴 중종은 낯빛을 찡그리고 싫어하는 기색이 완연하였다.’고 기록할 정도로 조광조는 말을 독점하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言多有失(언다유실)이라는 말과도 상통한 다변은 정치가인 조광조에게는 致命的(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은 무엇보다 말을 아끼고, 말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일찍이 중국송나라 때의 태종은 李防(이방)에게 칙명을 내려 ‘태평총류’(太平總類 “백과사전격“)라는 책을 編纂(편찬1천권)하게 하였다.

훗날 태종이 하루에 세 권씩 1천권이나 되는 책을 1년 만에 완독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임금이 읽었다고 해서 ‘太平御覽(태평어람)’이란 제목으로 바꾸기도 한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나오고 있다.
“精神(정신)은 감정에 의해서 發顯(발현)되며, 마음은 입을 통해서 發表(발표)된다. 복이 생기는 것은 그 徵兆(징조)가 있으며, 화가 생기는 데도 그 端緖(단서)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함부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지나치게 數多(수다)를 떨어서는 안 된다.작은 일은 큰일의 시작이 되고, 큰 江(강)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터지며, 큰 山(산)도 작은 陷沒(함몰)로 기울어진다. 이처럼 작은 일이라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군자란 항상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口是禍門(구시하문)
口 입구 是 이시 禍 재앙화 門 문문
 직역 = 입 이것이 재앙을 부르는 문 이니라!
해설입 = 조심하라는 뜻으로 입(口)방정으로 모든 일을 그릇 친다는 뜻

‘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이 말에서부터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성어가 나온 것. 그러므로 특히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는 항상 말을 아끼고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 공자의 도법을 유치한 행위라고 무시하였던 노자(老子)는 그의 도덕경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오직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뿐이다.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의 수단을 통해서 남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오직 실행으로 남을 감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공자의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  니라라는 知知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지지위지 불지위불지 시지)라는 공자의 실행 학문에 노자도 근접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무튼 조광조의 참화도 지식인으로서의 다변에서 비롯되었으니, 조광조는 공자나 노자의 글로 본다면 비록 도학정치를  현실로 이끌려 했으나 아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알지 못하는 부지자(不知者)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조광조가 죽은 지 500여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역사의 수레바뀌 속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정치가는 물론 대변인들 언론인들도 다변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김정국 [金正國, 1485~1541]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삭탈관직 되었다가 복관되어, 전라감사가 되고 뒤에 병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김굉필의 문인으로, 시문이 당대에 뛰어났고 의서에도 조예가 깊었다.

조광조 [趙光祖, 1482~1519]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여 사림 28명을 선발했으며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였다. 사흘 후 기묘사화가 일어나 능주로 귀양 갔으며 한 달 만에 사사되었다
참고 = 조선왕조 儒林103 / 두산백과
경화궁서당 강을선(법정) 063-652-8600 다음카페
http://cafe.daum.net/hanjain

 

2016-07-31 05:28:11에 등록된 글입니다.[Fr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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